"유권무죄, 무권유죄?"... 과연 누가 충신이고 누가 역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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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무죄, 무권유죄?"... 과연 누가 충신이고 누가 역적인가?
  • 임승환 기자
  • 승인 2019.10.09 2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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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환 영남취재본부장
/임승환 영남취재본부장

[신한일보=임승환 기자] 병자호란 때 끝까지 항전할 것을 주장했던 척화파의 김상헌(金尙憲, 1570~1652년)과 강화도마저 함락되었으므로 더 이상 버티는 것은 아까운 국민들의 목숨만 희생시킬 뿐이라며 강화를 주장했던 화친파의 최명길(崔鳴吉, 1586~1647년)은 비록 서로의 소신은 달랐지만,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똑같았다는 것이 후대역사가들의 평가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강화제안서를 작성했던 최명길도 애국자였고, 그 제안서를 찢었던 김상헌도 애국자였다고 평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김상헌은 끝까지 항전을 주장했던 주전론자(主戰論者)였고 최명길은 온갖 치욕을 감수하고 항복을 주도했던 주화론자(主和論者)였다는 것이다.

주화론자였던 최명길은 서인에 속하는 최기남(崔起南)의 아들로써 임진왜란이 끝나자 당대의 최고석학이요, 대정치가였던 오성(鰲城) 이항복과 상촌(象村) 신흠에게서 본격적으로 학문을 익힌 결과 약관20세에 초시를 합격한 뒤 연이어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들어섰다.

그런 최명길은 절친 장유(張維)와 함께 실익없는 명분을 중시하는 주자학보다 실익있는 행동을 중시하는 양명학(陽明學)에 심취했던 인물이다.

이렇게 현실적 실익을 중시했던 그였기에 명분이 아니라 현실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청(淸)과의 화친을 주도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최명길은 눈물을 흘리며 항복문서를 썼고 이를 알게 된 김상헌은 문을 박차고 들어가 써놓은 항복문서를 찢고 통곡하면서 소리쳤다. “명망있는 선비의 아들로서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오?” 그러자 최명길은 찢어진 그 항복문서를 주워 맞추며 말했다. “얼마나 더 많은 피를 흘려야겠소? 대감은 찢으나 나는 주워 맞추리다.” 여기서 후대의 우리는 묻고 싶다. 누가 충신이고 누가 역적인가?

이방원은 선죽교다리에서 정몽주를 살해했다. 정몽주의 일편단심이 가치 없다고 보아서가 아니라 새로운 국가건설이 더 가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박정희도 실패하면 만고의 역적이 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이대로는 안 된다는 확신이 더 강했기 때문에 5.16쿠데타를 일으켰다.

여기서도 누가 충신이고 누가 역적인가? 시저(Caesar)를 죽인 브루투스(Brutus, Lucius Junius)는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나는 시저를 덜 사랑한 것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다”고, 이 말은 나는 시저를 죽인 반역자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한 애국자라는 말이다. 부르투스는 반역자인가 애국자인가?

오늘의 우리나라 형국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한쪽은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한 빨갱이들을 몰아내자고 야단이고 다른 한쪽은 적폐의 원흉들을 몰아내자고 야단이다.

누가 역적이고 누가 충신인가? 예부터 권력은 양날의 칼이라고 했다. 그런 양날의 칼춤에 대한 최종평가는 당연히 국민과 훗날의 역사가 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각종 경기에서 무능한 감독의 최선은 때로 악몽이 되듯 무능한 지도자의 최선도 때론 국민적 악몽이 된다.

시리아(Syria) 현 대통령 아사드(Bashar al-Assad)는 2000년 단독출마한 대통령선거에서 인류역사에 다시 없을 법한 99.7%라는 지지를 받고 당선된 독재자로서 2011년 3월 15일 내전이 발생한 이후 2012년 2월 16일, 유엔총회에서 아사드 하야 결의안이 채택되었고, 2017년 11월 25일,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는 시리아내전감시단체인 “시리아인권관측소(Syrian Observatory for Human Rights)”의 추계에 의하면 343,000여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유엔총회에서 하야결의안이 채택되었다는 말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어긋나는 무자비한 폭군임을 세계가 인정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도 무뢰한 폭도들로부터 조상이 물려준 나라를 지키는 정의로운 수호자임을 자처하며 선량한 국민들을 폭도라는 이름으로 매일같이 수십 수백 명씩 죽이고 있다.

하야할 생각이 털끝만큼도 없음은 물론이다. 이런 포악하고 무능한 지도자일수록 아집은 더욱 강하다는 것이 역사의 증언이다.

이렇게 시리아국민들이 겪고 있는 악몽은 무능한 독재자 아사드가 만들고 있는 악몽이다. 귀신이 백번 잡아가도 시원치 않을 이런 독재자가 개과천선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미꾸라지가 용 되기보다 더 힘들 것임을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사드를 하야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라는 성경구절처럼 아사드와의 결전에서 승리하는 길뿐이다. 그래서 시라아내전은 계속되고 있고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혼란을 타개하는 최선의 길은 분명해진다.

바로 1688년에 있었던 영국의 명예혁명에 버금가는 현대판(?) 국민혁명을 결행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혁명은 피를 부르는 군사혁명, 데모혁명이 아니라 선거라는 국민적, 정당하고 합법적인 혁명을 통해 올바르고 능력 있는 지도자를 뽑는 것이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으니 오늘의 혼란한 정국도 결국은 내년 4월의 21대 총선에서 천심대로 종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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