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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파탄에 따른 국가의 운명.

[신한일보=임승환 영남취재본부장] 프랑스대혁명이 있기 전 프랑스는 3대 계층의 신분으로 구성된 신분사회였다. 

제1신분이었던 성직자들은 약10만 명이었고 제2신분이었던 귀족들은 약40만 명이었는데 이들 지배계층은 넓은 토지를 소유하고 면세특권까지 누렸던 반면 제3신분으로 피지배층에 속했던 약 2,500만 명의 평민은 국가재정의 전부를 담당하고 거기다 참정권까지 제한받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계속된 대외전쟁과 궁정의 사치생활로 재정이 악화되자 루이16세는 그 동안 면세특권을 누렸던 귀족과 성직자들로부터도 세금을 징수하고자 했다. 

그러나 귀족과 성직자들이 그런 과세안에 반발하자 루이16세는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3개 신분대표들로 구성된 삼부회(三部會)를 소집하게 되었다. 

그 삼부회에서 봉건적 특권의 축소와 폐지를 요구하는 제3신분 대표들은 그에 반대하는 제1, 2신분의 성직자 및 귀족들과 극렬히 대립하게 되었고 해결점이 모색되지 않자 제3신분 대표들은 결국 따로 떨어져 나와 국민의회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루이 16세가 무력으로 제3신분이 결성한 국민의회를 해산시키려고 하자 파리시민들이 봉기하여 바스티유감옥을 습격함으로써 혁명은 시작되었다. 혁명에 성공한 국민의회는 세계 최초로 국왕을 처형하고 봉건귀족들의 특권을 폐지함과 동시에 시민의 권리를 선언하였다. 

국민의회의 대표였던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 1758~1794)는 국왕을 처형한 후 곧 바로 혁명정부를 구성하고 집권하게 되었다.

로베스피에르는 루소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정치가로써 소시민과 노동자의 입장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 실천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처형하였으며 심지어 같은 동지였던 조르주 당통(Georges Jacques Danton, 1759~1794년)까지 처형하였다. 

그런 공포정치에 대한 불만은 드디어 1794년 테르미도르의 반동(Thermidorian Reaction)을 불러 일으켰고 그 결과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이 수많은 사람을 처형했던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고 말았다.

그 후 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나폴레옹이 혼란한 사회분위기를 틈타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하자 국민투표를 통해 공화정을 폐지한 후 마침내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 같은 프랑스대혁명의 전개과정은 계속된 대외전쟁과 특권층의 사치생활이 부른 경제적 재정악화가 그 출발점이었다.

미국의 독립혁명(American Revolution)도 본국(영국)의 과다한 경제적 수탈에서 비롯되었다. 1775년에서 1783년까지 7년 동안 계속된 미국의 독립전쟁은 영국이 제국의 유지비용 중 상당액을 식민지 미국으로부터 충당하기 위해 중과세한데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 중과세에 이어 미국독립전쟁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사건은 영국정부에 불만을 가진 식민지 주민들이 영국으로부터의 차(茶)수입을 저지하기 위해 인디언으로 위장하여 보스턴 항에 정박 중이던 영국동인도회사의 선박 2채를 불태운 1775년의 보스턴 차(茶) 사건이었다. 

그 사건이후 영국이 군대를 파견하자 미국인들은 민병대를 조직하여 대항하였고 그 대항전에서 독립파들이 전체인구 80%이상의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게 되자 1776년 13개 식민지 대표들은 미국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새로운 국가인 아메리카합중국을 선포하였다.

이런 역사적 사례에서 보듯 돈줄이 떨어진 국가는 국력이 떨어진 국가가 되므로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경기가 후퇴하는데도 복지비 인상이니 대북사업이니 하면서 돈 쓸 일이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가의 돈줄이 떨어져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들이라면 돈 줄 떨어진 국가들이 겪었던 위와 같은 비참한 굴욕의 역사를 제발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길 바란다.

임승환 기자  press35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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